연말연시만 되면 지방 기초자치단체의 거리는 정치인들의 새해 인사 현수막으로 포위된다. 교차로와 도로변, 사람이 오가는 길목마다 정치인의 이름과 얼굴이 걸린다. 시민들은 묻지 않았지만, 정치는 늘 먼저 인사를 건넨다.
문제는 이것이 여전히 ‘당연한 풍경’으로 취급된다는 점이다.
교통과 통신, 휴대전화조차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라면 거리 현수막은 불가피한 소통 수단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문자, SNS, 유튜브, 방송까지 정치인의 메시지가 차고 넘친다. 굳이 거리 공간을 점유하지 않아도 시민에게 다가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정치 현수막은 줄지 않는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법의 민낯이 드러난다.
같은 현수막인데, 정치인의 것은 허용되고 자영업자의 것은 철거된다.
정치인의 새해 인사는 ‘합법’이고, 먹고살기 위해 내건 현수막은 ‘불법’이다. 교통사고 우려와 도시 미관이라는 논리는 정치 앞에서는 관대해지고, 민생 앞에서는 가차 없이 적용된다.
이 모순의 근원은 공직선거법이다.
정치인의 현수막은 공직선거법상 예외 조항에 의해 사실상 보호받는다. 선거 시기가 아니어도 의정 활동 홍보, 새해 인사라는 이름으로 거리 점유가 가능하다. 반면 같은 공간에서 자영업자의 호소는 단속 대상이 된다.
법이 정치에만 관대하고, 시민에게는 엄격하게 작동한다면 그것은 법치가 아니라 특권이다. 더 큰 문제는 이 특례가 이미 시대착오적이라는 점이다. 정치인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유지되고 있지만, 지금 시대에 정치인이 거리 현수막 외에는 소통할 방법이 없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수막 하나가 도시 미관을 해친다면, 그것은 정치든 민생이든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교통안전을 위협한다면, 정치인의 얼굴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지금 현실은 다르다.
정치는 허용되고, 생계는 밀려난다.
이 불균형이 반복될수록 시민들은 법을 공정한 규칙이 아니라, 힘 있는 쪽을 위한 장치로 인식하게 된다.
정치가 진정으로 시민을 말할 자격이 있다면, 먼저 자신들의 기득권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거리 현수막 특례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시대에 맞게 정비할 것인지 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공직선거법과 옥외광고물 관련 법령을 함께 손질하는 논의가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
정치인의 인사는 온라인으로 충분하다.
시민의 삶은 거리에서 벌어진다.
그 공간을 정치가 독점하는 한, “시민과 함께”라는 말은 공허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새해 인사가 아니다.
정치가 스스로에게 적용한 특례를 걷어내는 용기, 그것이 법의 공정성을 회복하는 출발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치인들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이름과 얼굴이 적힌 새해 인사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걸려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정말 부끄럽지 않은가. 문자 한 통, 온라인 메시지 하나로도 충분한 인사를 굳이 거리 공간을 점유해가며 해야 했는지, 그 아래에서 철거되는 생계 현수막을 떠올려 본 적은 있는지 자문해 보기 바란다. 법이 허용한다고 해서 정당한 것은 아니다. 정치가 먼저 부끄러움을 아는 순간, 비로소 법 개정의 명분도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