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독 언론계 안에서 ‘사이비기자’라는 호칭이 난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은 일반 시민의 입에서 먼저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 기자가 기자를 향해 던진다. 그 순간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누가 사이비인가가 아니라, 왜 우리는 서로를 향해 그 말을 쉽게 쓰는가다.
사이비기자의 정의는 분명하다.
자신의 불법과 비위를 막기 위해 먼저 로비를 시도하고, 그다음 주변을 향해 “저 사람이 사이비기자”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행태다.
불법을 저지른 자도, 그 불법을 덮기 위해 언론의 이름을 왜곡하는 자도 모두 법의 심판대에 서야 할 대상이다. 이 문제에는 예외가 없다.
그런데 요즘의 현실은 묘하다.
기자가 기자를 향해 사이비라 낙인찍으며, 동시에 “나는 정당하다”고 외친다. 과연 그 말에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 언론인은 얼마나 될까.
필자는 언론 초년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명함에 늘 내 얼굴 사진을 넣어왔다.취재 현장에서 이름만 내미는 기자가 아니라, 내 얼굴을 걸고 책임지겠다는 다짐이었다.
기사 한 줄, 문장 하나가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얼굴 없는 언론이 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약속이었다.
필자는 20년 동안 언론 현장에 몸담아 왔다.
하루의 끝에 스스로 하늘을 본다. 오늘도 부끄럽지 않았는지 묻기 위해서다.
20년 동안 취재 현장에서 밥값은 늘 먼저 계산해 왔다.
광고 수주를 위해 단 한 번도 광고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다.
기사보다 앞서는 것은 충고였다. 말로 고칠 수 있는 문제라면 기사화보다 먼저 바로잡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공익의 문제는 다르다.
시민을 해치고 지역을 병들게 하는 사안이라면, 감정도 관계도 배제한 채 팩트를 확인하고 여과 없이 기사로 제시해 왔다. 이것이 언론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금의 언론 현실은 씁쓸하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사이비”라 부르며, 동시에 자신만이 정의로운 언론, 자신만이 최고의 언론사로 둔갑한다. 그 과정에서 언론에 대한 시민의 신뢰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무너지고 있다.
이제 멈춰야 한다.
사이비라는 낙인을 경쟁처럼 주고받을 시간이 없다.
자정은 필요하지만, 자만은 독이다.
언론의 신뢰가 흔들린다면, 그 책임은 특정 개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있다.
언론은 남을 재단하기 전에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어야 한다.
서로를 향한 손가락질보다, 자기 성찰이 먼저다.
그것이 언론이 다시 시민 앞에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