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겨울, 구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펼쳐졌다.
찬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엄동설한, 거리 한복판에 시민들이 모였다.
정치 집회도, 관 주도 행사도 아니었다.
초등학생부터 암환자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시민들이 얼음물을 뒤집어썼다.
그들이 외친 구호는 분명했다.
SK하이닉스 구미 유치. 그리고 그 이면에는 “구미의 미래를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정치도, 행정도 아닌 ‘시민’에서 시작된 반도체 논의
당시 구미 국가산업단지는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다.
전자·기계 중심의 기존 산업 구조는 한계에 부딪혔고, 미래 산업으로의 전환 없이는 도시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정치권과 행정은 선뜻 나서지 않았다.
“현실성이 없다”,“대기업은 이미 수도권과 충청권으로 정해졌다”,“괜히 기대만 키운다”는 말이 되풀이됐다.
그 공백을 채운 것이 바로 시민이었다.
정당도 없었고, 조직도 없었고, 예산도 없었다.
오직 위기감과 책임감으로 시작된 순수 시민운동이었다.
한겨울 아이스버킷 챌린지는 보여주기식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몸으로 외친 경고였고, 미래를 향한 마지막 호소였다.
그날, 정치와 행정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러나 그날 현장에서 정치권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행정 역시 적극적인 정책 제안이나 공식적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
시민의 외침은 ‘과한 요구’로, ‘현실을 모르는 주장’으로 취급됐다.
지금 와서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때 단 한 번이라도, 정치와 행정이 시민의 문제 제기를 정책 테이블에 올렸더라면 구미의 산업 지형은 달라질 수 있지 않았겠는가.
7년 후, 되풀이되는 아이러니
시간이 흘러 지금, 정치권은 다시 반도체를 이야기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이전 가능성, 지역 분산 배치, 국가 전략산업의 균형 발전이 화두다.
그러나 이 담론은 새롭지 않다.
이미 7년 전, 구미의 시민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권한 없는 시민의 외침이었고
지금은 정치적 이해가 덧붙은 주장이라는 점뿐이다.
실패한 것은 시민운동이 아니다
분명히 해야 한다.
구미 반도체 시민운동은 실패하지 않았다.
실패한 것은 이를 외면하고, 정책으로 만들지 못한 정치와 행정이다.
시민은 이미 방향을 제시했다.
“반도체 없이는 구미의 미래도 없다”고. 그 경고를 무시한 대가는 산업 공백과 청년 유출, 도시 경쟁력 약화로 돌아오고 있다.
기억하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역사는 기록되지 않으면 반복된다.
한겨울 얼음물을 뒤집어쓴 시민들의 모습은 구미 산업사의 한 장면으로 남아야 한다.
구미의 반도체 논의는 정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시민이 먼저 외쳤고, 정치가 뒤늦게 따라왔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어떤 반도체 전략도 공허하다.
그 겨울, 차가운 얼음물은 시민이 맞았고, 미래를 놓친 책임은 정치와 행정이 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