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팹, 또 놓친다면 경북 정치권은 도민 앞에 설 자격이 있는가
8년 전 SK하이닉스 유치전이 한창이던 시절, 구미는 절박했다. 시민들은 거리에서 서명운동을 하고, 기업 유치를 위해 발로 뛰었다. 지역의 미래가 걸린 문제였기에 정치권보다 시민들이 먼저 움직였다. 그 절박함을 지금도 기억하는 시민들이 많다.
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지도를 다시 그릴 또 한 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단순한 공장 하나가 아니다. 수백조 원이 투자되는 반도체 전공정(Fab)이다. 어느 지역에 들어서느냐에 따라 향후 수십 년간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중심축이 결정되는 국가 전략사업이다.
최근 정부가 광주·전남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를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지역사회는 다시 긴장하고 있다. 특히 후공정이 아닌 전공정 팹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라면 이는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지도를 새로 그리는 결정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김장호 구미시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5산단 산업용지를 평당 1천 원에 공급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내놓았다. 전력과 용수, 산업부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산업 생태계까지 구미가 갖춘 경쟁력을 조목조목 설명하며 기업과 정부를 향해 구미를 선택해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반도체 팹은 시장 혼자 유치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경상북도가 앞장서야 하고, 지역 국회의원들은 당을 떠나 정부와 기업을 설득해야 한다. 도의회와 시의회는 공동 결의에 나서야 하며, 상공회의소와 경제계는 산업계의 절박한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 시민사회 역시 지역의 미래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경북은 어떠한가.
시장이 외치고 있을 뿐, 범도 차원의 총력 대응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여야를 떠난 공동 대응도, 정치권의 초당적 연대도 찾아보기 어렵다.
지역의 미래가 걸린 문제 앞에서 침묵하는 정치라면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반도체 팹 하나는 공장 하나가 아니다. 수백 개의 협력기업이 따라오고, 수만 개의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지며,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을 이유가 생긴다. 반대로 이를 놓친다면 구미와 경북은 또 한 번 수도권과 다른 지역에 미래 산업을 내어주는 결과를 맞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제는 기자회견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경상북도는 즉시 '반도체 팹 유치 특별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여야 정치권과 경제단체, 대학,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범도민 추진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실과 정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직접 찾아가 구미의 경쟁력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총력전이 시작돼야 한다.
무엇보다 경북의 모든 선출직은 이번 반도체 팹 유치를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걸고 추진하겠다는 각오를 도민 앞에 밝혀야 한다.
지역이 살아야 정치도 존재한다.
만약 이번에도 반도체 전공정 팹을 다른 지역에 내주고 만다면 "최선을 다했다"는 말만으로는 도민을 설득할 수 없다.
도민은 과정을 기억하지만 결국 결과를 평가한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그 책임은 시장 한 사람의 몫이 아니다. 경상북도와 구미시, 지역 국회의원, 도의원, 시의원, 그리고 지역 정치권 모두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도민 역시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지역의 미래가 걸린 결정 앞에서 누가 뛰었고, 누가 침묵했는지. 누가 행동했고, 누가 구경만 했는지.
반도체 팹 유치는 구미의 자존심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이번만큼은 모두가 함께 뛰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역사도, 도민도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