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운명을 바꿀 만큼 큰 기회가 찾아오거나, 지역사회를 흔드는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늘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모두를 한자리에 모아 지혜를 모을 수 있는 '구미의 어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방자치 시대에는 시장과 국회의원이 지역을 대표하는 지도자다. 그러나 지역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사안에서는 정치적 위치를 넘어선 또 다른 존재가 필요하다. 현직 시장과 국회의원, 도·시의원, 경제계, 시민사회가 서로 다른 입장에 설 때, 그들을 한자리에 앉혀 "구미를 위해 함께 갑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원로의 역할이다.
우리 사회는 갈등이 생기면 쉽게 법과 원칙에 맡기려 한다. 물론 법은 옳고 그름을 가리는 최후의 기준이다. 그러나 법이 분쟁을 끝낼 수는 있어도 공동체의 상처까지 치유하지는 못한다. 판결은 끝나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은 앙금은 지역사회를 오랫동안 갈라놓는다.
예전에는 향약이라는 공동체 문화가 있었다. 갈등이 생기면 마을의 어른들이 먼저 나서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를 설득하며 화합의 길을 찾았다. 법보다 먼저 공동체를 생각했던 선조들의 지혜였다.
지금 구미에도 그런 역할이 절실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반도체 팹 유치전이다. 이것은 특정 정당의 승패를 가르는 정치 이벤트가 아니다. 구미의 미래 산업과 청년 일자리, 지역경제의 생존이 걸린 절체절명의 과제다.
유치에 성공하면 모두가 함께 웃을 일이고, 실패하면 구미 시민 모두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런데도 실패한 뒤 "국민의힘이 못해서", "민주당이 협조하지 않아서"라며 책임 공방만 벌인다면 시민들은 정치를 더욱 외면하게 될 것이다.
시민이 원하는 것은 정쟁이 아니라 성과다. 정치는 실패 이후의 책임 공방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을 위해 처음부터 초당적으로 힘을 모으는 것이 본연의 역할이다.
이와 함께 언론의 역할도 결코 가볍지 않다.
지역언론은 어느 한쪽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거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편을 가르는 존재가 아니다. 지역의 미래를 위한 공론장을 만들고, 갈등을 증폭시키기보다 해법을 제시하며, 서로 다른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을 돌아보면 구미 발전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편에 서서 이편과 저편을 나누고, 지역사회의 편 가르기에 편승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언론이 갈등을 소비하는 데 그친다면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구미 시민이고, 구미의 미래다.
진정한 언론은 갈등을 확대하는 확성기가 아니라 지역사회를 하나로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
구미는 지금 반도체 팹 유치외에도 미래 구미시를 위한 대형 국책사업 등 앞으로도 수많은 기회와 갈등의 순간이 찾아올 것이다.
그럴수록 지역 원로들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 정치권과 경제계, 시민사회, 학계를 한자리에 모아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구미의 미래라는 더 큰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선진사회는 갈등이 없는 사회가 아니다. 갈등을 공동체의 지혜로 풀어내는 사회가 선진사회다.
구미에도 이제는 지역을 위해 기꺼이 정치를 내려놓고, 세대를 아우르며, 모두의 손을 맞잡게 할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길을 함께 비추는 언론이 필요하다.
구미의 미래는 법정에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화합하게 만드는 공동체의 지혜 속에서 만들어진다.
오늘의 구미에 가장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쟁이 아니라, 더 큰 어른의 품격이다. 원로는 사람을 모으고, 정치는 힘을 모으며, 언론은 여론을 모아야 한다. 그 세 가지가 하나로 이어질 때 비로소 구미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더 큰 도시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